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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ST ARTICLE/BEHIND STORY

behind 1. #5 시간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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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1. #5 시간의 틈

 

긴 비행을 끝내고 몇 시간 만에 육지에 발을 디디면, 찌뿌둥한 몸과 비몽사몽 한 정신

그리고 낯선 도시의 언어들만이 내 모든 신경을 자극한다.

감각들은 오로지 낯설고 어색하게 인지된다.

 

그리고 주변을 가득 채우는 낯선 감각들은, 벌어진 시간의 간격을 타고 온다.

 

시차(時差), 시간의 틈.

우리의 비행은 시간의 틈을 만들어낸다. 그 틈은 흔히 시차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시차는 개인이 가늠할 수 없는 두 도시 사이의 간격을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긴 시간의 비행을 끝낸 뒤 낯선 언어로 가득한 공항에 도착하면

우리는 제일 먼저 손목시계의 분침을 돌려 시간을 맞추고, 핸드폰의 시간대를 다시 설정한다.

그건 완전히 다른 시간의 결을 살게 될 며칠간의 여행을 상징하는 행위이자

앞으로의 여행을 위해 여행자가 행하는 일종의 의식과도 같다.

수화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시간 동안 가만히 손목시계의 바늘을 돌리고 있으면

간격은 사라지고 틈이 채워지는 것 같은 느낌에 빠져든다.

우리의 두 눈으로 도시 사이의 간격을 볼 수 없는 한

먼 곳으로 떠나왔다는 사실을 가장 절실하게 감각하는 때는 시차를 확인할 때다.

 

시간의 사이에 틈이 생기는 일은 우리의 일산에서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보통 우리의 시간은 일상 속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흐른다.

1초가 1분이 되고 1시간이 되는 그 흐름은 너무나도 정확하고 확고해서

절대 뒤틀려서 뒤로 가거나 앞으로 건너뛰는 일이 없다. 여행에서의 비행은 그래서 특별하다.

우리는 다른 시간의 영역으로 이동할 수 없지만 지구의 자전과 도시 사이의 거리가 만들어내는

시간의 간격은 우리를 다른 시간대에서 살아볼 수 있게 해준다.

오후 세시에 비행기에 올라 10시간 남짓을 비행했음에도 오후 여섯 시밖에 되지 않는다던가 하는 일은

시간의 간격이 만들어내는 나름의 시간여행인 셈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비행기라는 타임머신을 타고 시간여행을 하는 시간 여행자들일지도 모른다.

 

시곗바늘을 돌리고 멍한 정신이 맑게 돌아오는 동안 캐리어가 컨베이어벨트 위로 떨어졌다.

묵직한 캐리어를 끌고 공항을 나오니 도시의 해는 아직도 환하게 떠 있다.

시차로 인해 과거의 시간 속으로 흘러온 셈이 된 나는 이 도시에서 미래로부터 온 여행자가 됐다.

나는 내가 떠나온 곳에서 나보다 미래를 살고 있을 너에게 문자를 보내며 공항에 나선다.

그렇게 낯선 도시에서 나는 과거의 시간을 살기 시작한다.

 

일상의 시간을 여행하던 우리가 전혀 다른 시간 속을 걷는 일,

나는 지금 시간의 틈을 건너 다른 시간의 결을 여행하고 있다.

 

 

작가 정욱 ㅣ https://brunch.co.kr/@framing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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