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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ST ARTICLE/BEHIND STORY

behind 1. #13 희미해지기에 기억되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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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hind 1. #13 희미해지기에 기억되는 것들

 

창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이 손등에 가 닿았다.
빛이 스며드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부분에 확연한 경계가 생겨났다.
빛이 닿는 부분의 온도는 적당히 따스했다.
창 밖으로는 비행기가 지나가며 남긴 희미한 흔적들이 보였다.
그건 마치 흐릿해져 가는 여행의 기억들 같았다.


여행의 매일이 선명하게 기억될 수는 없다.
우리의 기억력은 형편없어서 불과 며칠 전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적당히 생략되고 압축된 채로 머릿속을 떠다닌다. 

우리는 버스나 기차, 비행기 창 밖에서 흘러가는 풍경의 도움을 받아 여행의 기억을 되짚어보기 위해 노력하지만 몇몇 일들은 벌써 기억에서 희미해져 버린다.
그러나 이처럼 희미해진 몇몇 기억들 덕분에 머릿속에는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여행에서의 장면들이

더 또렷하게 살아난다.


우리의 하루는 소설처럼 압축된 형태의 이야기로 펼쳐지지 않는다.
현실은 그런 압축적인 강조점들뿐만 아니라 희미하고 작은 점들이 촘촘하게 모여 이루어진
하나의 길고 지루한 선의 형태를 띠고 있다.
여행지에서의 날들은 때로는 즐겁고 감명 깊지만 대체로 지루한 여정들로 가득하다.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멍하니 쳐다보며 수하물을 기다리는 일이나,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나올 때까지

아무 의미 없이 사진기 속 사진들을 돌려보는 일 따위는 여행의 대부분을 차지하지만
이는 그다지 인상적인 기억이 되지 못한 채로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이 모든 기억을 다 머릿속에 담는다면 아마 우리의 여행은 길고 지루한
심지어는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하는 폐쇄회로 카메라에 녹화된 영상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억들은 대체로 기억 속에서 희미하게 형태만 남은 채로 머릿속에서 편집되고 생략된다.
그렇게 편집된 기억들은 잘 정리된 한 편의 소설처럼 우리의 머릿속에 남는다.


그래서 여행을 한다는 것은 무수한 여정 속에서 행간을 읽어내는 것과도 같다.
행간을 온전히 읽어내면 우리의 머릿속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또렷한 형태의 소설이 쓰인다.
그렇게 머릿속에 쓰인 여행이라는 소설은 일상 속에서 가끔씩 꺼내어 천천히 읽게 되는 자기만의 소설이 된다.


작가 정욱 | https://brunch.co.kr/@framing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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