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111) 썸네일형 리스트형 behind 5. #11 유리창 너머의 여름 behind 5. #11 유리창 너머의 여름 커다란 유리창 너머로 여름이 보인다. 손바닥으로 그늘을 만든 채 빠르게 걷는 사람들과 이제는 완연한 녹색을 뽐내며 흔들리는 나뭇잎까지. 생동감 넘치는 여름의 풍경을 보며, 밖에 있었다면 강한 햇살에 금방이라도 녹아내렸을 것 같다고 생각해본다. 창문을 조금 열자 방 안으로 여름의 공기가 매미 소리와 함께 밀려 들어와 차가운 에어컨 바람에 섞인다. 밖이었다면 한없이 뜨거웠을 그 공기가 오히려 약간은 쌀쌀했던 몸을 따뜻하게 감싸온다. 때로 어떤 감각은 한 발짝 떨어져 느끼고 싶을 때가 있다. 방 안에 앉아 유리창 너머의 여름을 보며 너무 덥지 않은, 적당히 뜨거운 여름을 즐기는 것처럼. 작가 정욱 https://brunch.co.kr/@framingtheworld behind 5. #10 사진첩 속 쌓인 기억 behind 5. #10 사진첩 속 쌓인 기억 스마트폰 사진첩을 훑어보면 찍어놓고 다시 보지 않은 사진들이 가득하다. 그렇게 쌓인 사진만큼이나 다양한 기억들도 함께 쌓인다. 기껏 찾아간 여행지에서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져 비에 흠뻑 젖었던 날 우연히 들른 한강에서 평생 잊지 못할 노을을 마주했던 날. 기억이 사진과 다른 점이라면, 쉽게 찍고 지울 수 없다는 점일 테다. 하나둘 쌓인 기억이 넘쳐날 때쯤이면, 한 번쯤 사진첩을 정리하듯 깔끔하게 정리하고 비우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기억은 늘 제멋대로라 잊고 싶은 기억은 잊히지 않고, 잊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희미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좀 흔들리고 못 나온 사진도 다시 보면 그때 그 시간을 추억할 수 있게 해주듯 한가득 쌓인 좋고 싫은 기억들도 언젠가 기.. behind 5. #9 오후의 라디오, 작은 평화 behind 5. #9 오후의 라디오, 작은 평화 부모님과 함께 살던 아파트 주방의 찬장 아래엔 하얗고 슬림한 라디오가 설치되어있었다. 주방에 있을 때면 엄마는 늘 그 라디오를 틀어놓곤 했다. 해가 기우는 오후 네 시 즈음엔 늘 부엌에 난 작은 창으로 햇살이 넘치게 들어왔다. 냄비에선 된장찌개가 하얀 김을 내며 끓고 있었고, 라디오에서는 사람을 적당히 나른하게 만드는 목소리가 철 지난 노래와 함께 햇살을 타고 흘렀다.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풍경. 나는 그런 풍경을 보고 들으며 자랐다. 지금도 햇살이 한껏 나른해지며 게으름을 피우는 오후 시간엔 괜스레 라디오를 틀어보곤 한다. 그러면 어느새 눈앞엔 어린 시절의 풍경이 펼쳐진다. 지직-거리는 노이즈가 섞인 주방의 빌트인 라디오는 아니지만, 넘치도록 평화로운.. behind 5. #8 평일, 한낮의 생동감 behind 5. #8 평일, 한낮의 생동감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이 한낮에 또렷이 깨어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우리는 낮 동안 깨어있다기보단 잠들어 있는 편에 더 가깝다. 화창한 평일 한낮의 시간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생각해 보면 의외로 답은 명확하게 나온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대부분 멍하니 학교나 회사에서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조용히 기다리는데, 그건 마치 죽어있는 것과 다름없는 상태다. 이런 사실을 깨닫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평일 오후 세시쯤 그냥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를 산책해 보면 된다. 그럼 당신이 알지 못했던, 잊고 지내던 세계가 그곳에 펼쳐질 것이다. 하교하는 어린아이들의 명랑한 웃음소리와 한가로이 길을 거니는 노인들의 모습과 부드러운 바람결, 한산한 거리의 골목 풍경까지. 주말의 낮.. behind 5. #7 푸른 새벽의 굿모닝 behind 5. #7 푸른 새벽의 굿모닝 차갑고 푸른 새벽의 공기를 맞으며 숙소를 나선다. 낯선 곳에서의 하루는 늘 언제나 조금 이른 편이다. 이른 새벽의 인도를 걸으며 생각한다. '평소에도 지금처럼 일찍 눈이 떠지면 참 좋을 텐데.' 여행지의 마법에 취한 상태로 당신은 괜스레 집 앞의 카페에서 따뜻한 커피를 한 잔 시켜본다. 모두가 잠들었으리라 생각한 시간이지만, 의외로 카페 안은 부지런한 현지인 몇이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앞에 놓인 에그 홀더 안의 삶은 달걀을 반 정도 먹은 노신사는 신문을 펴든 채 기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이내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는 종업원의 외침이 들리고 당신은 커피를 받아든 채 명랑하게 "굿모닝!" 하고 인사를 건넨다. 어쩐지 기분 좋은 하루가 시작될 것만 같은 하루.. behind 5. #6 취향의 여행 behind 5. #6 취향의 여행 대다수 유명한 여행지에는 어김없이 이곳이 어디인지를 알려주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놓치면 후회할 것들을 알려주는 일은 중요하고 그런 것들을 빠짐없이 경험하는 것도 좋지만, 정해진 곳들을 숙제하듯이 돌아보는 여행보다 우리는 대부분 우연이 만들어 낸 여행의 순간을 더 오래 기억한다. 잠깐 쉬려고 들어간 식당의 음식이 맛있었다든지 숙소 주변의 별것 아닌 풍경이 마음에 가장 오래 남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꼭 남들이 정해놓은 코스가 아니더라도 나만의 여행을 만드는 일, 저마다의 취향과 선호는 우리의 여행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작가 정욱 https://brunch.co.kr/@framingtheworld behind 5. #짧은 영원의 1km behind 5. #짧은 영원의 1km 하루를 마무리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유난히 감상에 젖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런 감상은, 하필이면 힘들었다고 콕 집어 설명할 수도 없는 평범하고 납작한 날에 찾아온다. 연락처의 목록을 의미 없이 위아래로 훑다가, 풀어놓을 곳 없는 마음이 헛헛해지면 이내 핸드폰을 주머니에 다시 넣는다. 버스 창밖으로는 하나둘 불빛이 켜지는 한강의 저녁 풍경이 비치고, 그 위로 자줏빛 노을이 내려앉기 시작한다. 10분 남짓 되는 한강 위 대교를 건너는 짧은 시간은 납작했던 하루를 풍부하게 만드는 훌륭한 재료가 되어준다. 약 1km, 그건 하루를 극적으로 바꾸기에 충분한 영원의 순간이다. 작가 정욱 https://brunch.co.kr/@framingtheworld behind 5. #4 처음의 겨울 behind 5. #4 처음의 겨울 겨울 하면 '처음'이라는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아무래도 '첫눈'이다. 그 해 겨울에 처음 오는 눈을 가리키는 단어, '첫눈'. 눈이 내리고, 온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면 풍경은 늘 보던 모습이 아닌 낯설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마치 난생 처음 보는 듯한 풍경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한 해가 가고, 새로운 해가 시작되는 순간도 겨울이라는 계절 안에 있다. 그러고보니 이 계절의 차가움이 주는 맑고 깨끗한 느낌은 처음이라는 단어가 주는 싱그러움과도 닮아 있다. 처음 그리고 겨울. 무언가를 시작하기에도, 처음 맞이하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작가 정욱 https://brunch.co.kr/@framingtheworld 이전 1 2 3 4 5 6 7 ··· 1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