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ST ARTICLE/BEHIND STORY (85) 썸네일형 리스트형 behind 4. #22 바다와 마음의 풍경 behind 4. #22 바다와 마음의 풍경 뜨거운 태양 아래 앉아 파도가 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바람에 실려 온 짭짤한 냄새가 이곳이 바다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냄새엔 바위틈에서 자라나는 해초와, 바닷물이 머금은 소금과 모래와 바삭하게 내리쬐는 햇살의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건 '바닷물 냄새'라기 보다는 차라리 '바다의 풍경'에 대한 냄새로 느껴졌다. 그렇게 풍경의 냄새를 맡으며, 먼 곳으로 떠나왔다는 감각을 생생하게 느꼈다.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은 감각에 현실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주황빛으로 부서지는 햇살이 펼쳐진 바다 모습을 담았다. 어쩔 줄 몰라 요동치는 마음을 붙잡으며, 괜스레 애꿎은 사진만 찍게 되는 여름 풍경이었다. 작가 정욱 https://brunch.co.kr/@f.. behind 4. #21 기다림 뒤의 달콤한, 여행 behind 4. #21 기다림 뒤의 달콤한, 여행 어릴 때 음식을 먹을 때면 언제나 맛있는 걸 가장 마지막까지 남겨뒀다가 먹곤 했다. 케이크 위에 장식된 초콜릿을 남겨 두었다가 먹는다든지, 호빵 속 팥 앙금을 한껏 베어 물기 위해 일부러 가장자리만 먼저 먹어치운다든가 하는 식으로. 음식을 먹을 때 맛있는 걸 먹기 위해선 맛없는 것들을 먹어야 하듯이, 세상일도 마찬가지여서 재밌는 일,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하기 싫은 일을 얼른 해치워버리거나, 아니면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한다. 요즘엔 여행이 딱 그런 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케이크 위 초콜릿이나 호빵 한가운데 같은 그런 것. 기다림 뒤에 주어지는 어떤 달콤한 보상. 먼 곳으로 여행을 가지 못하는 기간이 늘면 늘수록, 여행이 인생에서 얼마나 .. behind 4. #20 여행이 제철 behind 4. #20 여행이 제철 무작정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지게 만드는 날씨가 있다. 평소 밖에 나가는 걸 즐기지 않더라도 이런 날은 으레 밖으로 나가야 할 것만 같다. 음식에 제철이 있듯 여행에도 제철이 있다면, 바로 '오늘은 여행이 제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런 날씨. 마스크라는 필터가 없어서 호흡이 한결 가볍던 시절, 여행은 날씨가 만들어내는 신선한 공기와 그 냄새를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바닷가 옆으로 난 오솔길을 걸으며 물비린내와 소금기의 짠 내, 싱그러운 나뭇잎 냄새가 최적의 비율로 섞여 실려 오던 순간이나, 창문을 내린 채 달리는 차 안에서 쏜살같이 지나가는 풍경을 냄새로 쫓던 기억들. 여행이 제철인 날씨의 냄새가 진하게 그리운 날이다. 작가 정욱 https://b.. behind 4. #19 도시의 작별 인사 behind 4. #19 도시의 작별 인사 여행을 갈 수 없는 시기가 점점 길어지면서, 자연스레 여행이 쉬웠던 시절 머물렀던 도시들을 떠올려보게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들은 신기하게도 좋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도시들이었다. 문득 오래 남는 여행이란 약간의 실패와 거기서 오는 실망감이 함께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물 흐르듯 완벽했던 여행은 머릿속에서 금방 잊혀진다. 돌아온 뒤에도 계속 생각나는 여행은 기차 시간을 착각해 다섯 시간 동안이나 다음 기차를 기다렸거나, 환승 시간이 촉박해 비행기를 타러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도록 달린 여행들이었다. 거기엔 실패의 에피소드가 있었다. 여행이 너무 완벽하게만 흘러간다면, 기억도 그만큼 쉽게 흘러가 버린다. 실패한 여행의 기억, .. behind 4. #18 이제는 낯설어진, 익숙했던 모든 것들 behind 4. #18 이제는 낯설어진, 익숙했던 모든 것들 방안을 정리하다가 구겨진 영수증 하나를 발견했다. 낯선 나라의 언어가 쓰여있는 것을 보니, 지난 해외여행에서 들렀던 가게의 영수증인 듯했다. 그 여행은 새벽 일찍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새벽 비행기를 놓칠까봐 공항에 미리 도착해 근처 호텔에서 하루를 보냈다. 설레는 여행의 전날은 늘 잠이 얕았고, 그렇게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는 침대에서 일어나 캐리어를 끌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마시며 공항으로 향했다. 낯선 언어로 적힌 구겨진 영수증 종이와, 공항으로 향하는 떨리는 마음. 마스크를 거치지 않은 공기를 한껏 들이마신 상쾌한 새벽 공기까지. 1년 사이 내 곁을 떠난, 한때는 익숙했던 낯선 것들이 떠오르는 날이었다. 작가 정욱 https.. behind 4. #17 여기서부터, 일상은 여행이 됩니다 behind 4. #17 여기서부터, 일상은 여행이 됩니다 호텔 건물을 나서면서 아쉬운 마음에 뒤를 돌아봤다. 흘끗 돌아본 곳에는 회백색의 커다란 건물이 건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무표정한 건물 위로 지난 여행의 순간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언젠가 여행은 어떤 표정을 지니고 있을까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다양한 얼굴을 떠올려 보았으나, 그건 모두 내가 여행의 시간이 끝난 뒤에 그린 것들이었다. 막상 여행은 아무런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여행에 아무런 표정이 없으므로, 우리는 이 무표정한 여행의 얼굴 위에 다양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여행은 대체로 환희에 가득 찬 기쁜 색이지만, 가끔은 슬픈 풍경이 되기도 한다. 일상으로 돌아와 여행을 떠올리면 뒤늦게 드는 감정들. 여행의 표정은 우리가 .. behind 4. #16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 behind 4. #16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 연말의 들뜬 마음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렘과 함께 찾아온다. 일 년 중 단 하루뿐인 그날을 기다리면서 캐롤을 듣고, 반짝이는 트리에서 따스함을 찾는 마음. 거기엔 지나가 버린 한 해를 차마 보내지 못하고 붙잡고 싶어 하는 아쉬움도 함께 있다. 그렇게 일 년 만에 다시 찾아온 크리스마스를 아무런 이벤트 없이 조용히 흘려보내더라도,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느꼈던 설레는 마음은 오래도록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 남는다. 그리하여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간직했던 설렘으로 다음 해의 12월 25일을 기다리게 만들고, 또다시 설렘 가득한 1년을 보낼 수 있게 하는 것. 어쩌면 크리스마스의 진짜 기적은 크리스마스가 우리에게 주는 그 선물 같은 기다림일지도 모른다.. behind 4. #15 마지막 순간을 미루는 일 behind 4. #15 마지막 순간을 미루는 일 욕조 옆으로 난 기다란 창문으로,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며 욕실을 비추고 있었다. 욕조의 물을 틀어놓고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받아놓은 물 위로 빛이 일렁이며 반짝였다. 꿈만 같던 여행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순간이 오면, 자꾸만 마지막을 유예하고 싶어진다. 급하게 외출 준비를 할 필요도, 무거운 발걸음으로 밖을 나설 필요도 없는 여행에서의 아침.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아침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평소보다도 최대한 늦장을 부리며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으려 애쓴다. 마지막이라는 시간의 끝으로부터 달아나 욕조에 들어간 채 가만히 눈을 감았다. 창밖으로는 아침 바다가 출렁였고, 감은 두 눈 위로는 창문을 통해 들어.. 이전 1 2 3 4 5 6 7 ··· 1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