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 1. #9 작은 낭만
behind1. #9 작은 낭만
여행을 떠나 도착한 새로운 곳에서의 기상시간은 늘 평소보다 이르다.
시끄러운 알람도 맞추지 않았지만 이른 아침에 눈은 절로 떠지고, 아침잠에 취하는 일도 없이 정신은 또렷하기만 하다.
전쟁같은 출근길과 씨름해야하는 평소에 이렇게 눈이 떠지면 좋으련만. 어쩐지 억울한 감정까지 생겨난다.
설렘과 긴장이 버무려진 채,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히 하루를 시작한다.
여행이 주는 설렘은 곧 긴장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새로운 장소와 환경이 주는 긴장감은, 아직 그 곳에 익숙해지지 않은 우리를 끊임없이 당황하게 만들곤 한다.
여행을 시작하며 가졌던 단단한 마음을 여행의 시간 내내 갖고 있기란 쉽지 않다.
그건 우리의 의지나 마음의 문제라기보단, 여행의 속성이 원래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자의 마음은, 마치 뜨거운 물에 너무 삶아서 물렁해져버린 채소처럼 쉽게 흐물거리고 자주 연약해진다.
난생 처음 보는 도시에서 길을 잃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기도 하고, 힘들게 찾아간 박물관의 문이 굳게 닫혀있으면 앞으로 남은 일정과 넘쳐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막막해지기도 한다.
이런 감정들은 여행지에서의 외로움과 뒤섞이며 금세 여행자를 지치게 만든다.
그러나 흐물거리고 연약해진 여행자의 마음은 오히려 그런 이유들로 인해 작은 일에도 쉽게 마음을 뺏기고 감동한다.
아침 특유의 차분한 활기로 가득한 호텔의 로비는 여행자의 마음에 잔잔한 파동을 일으키며 작은 흥분을 불러일으키고
평소라면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호텔 직원의 미소와 낯선 투숙객들과의 가벼운 눈인사는
얼어붙었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그렇게 숙소를 나와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별 기대 없이 사먹은 길거리 음식의 맛에 온 마음을 빼앗기기도 하며, 어디선가 날아온 비눗방울을 잡으려 폴짝거리며 뛰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평화로운 이 한때를 절대 잊지 않으리라 다짐하기도 한다.
이런 사소한 사건들은 우리에게 '여행은 역시 낭만적인 행위야'라고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지만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건 여행을 떠나온 자의 마음 한구석이 늘 외롭고 퍽퍽함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꿈꾸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쩌면 약해진 여행자를 치유하고 다시 꿈꾸게 하는 건, 도시의 랜드마크도 거대한 자연경관도 아닌,
여행의 과정에서 무심코 다가오는 작은 낭만들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