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ind1. #1 각자의 시간
behind1. #1 각자의 시간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보이는 풍경은 책상에 가득 쌓인 책 더미였다.
퇴근길이면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서점에 들러 책을 한 권씩 사는 습관이 생긴 탓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내게 읽히지 않은 책들은 먼지와 함께 책상에 쌓여만 갔다.
책을 사들이는 일만큼이나 습관적으로 약속을 잡고 사람을 만났다.
사람들과 웃고 떠들며 술 한 잔을 기울이는 시간은 대체로 즐거웠다.
그러나 약속이 끝나고 집으로 향하는 길이면, 알 수 없는 공허함이 나를 덮쳐오곤 했다.
떠들썩한 모임일수록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느끼는 공허함의 크기는 더 컸다.
가끔은 퇴근길에 무작정 한강으로 향하기도 했다.
저녁 일곱 시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당산 철교를 지나면 창 밖으로 해 질 녘의 한강이 보였다.
해 질 녘의 한강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맥주를 한 캔 사 들고 노을 지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미세먼지로 가득한 하늘은 대체로 낮은 채도의 특색 없는 회색일 때가 더 많았지만,
맑게 갠 날이면 하늘은 부드러운 보랏빛과 강렬한 주황색 그사이 어디쯤의 색으로 물들곤 했다.
노을 지는 서울 하늘은 대체로 비슷했지만, 한 번도 똑같았던 적은 없었다.
흘러가는 구름의 모양이나, 한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는 날마다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그 시간의 한강 변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앉아 가져온 음식을 먹거나,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즐겁게 웃고 있었다.
한강을 바라보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뭔가 허전했던 건, 그 속에 정장 내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특별하다고 여긴 것도 일상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순간, 이야기의 힘은 떨어졌다.
결국, 사람들이 일상을 떠나 여행을 결심하는 건 이야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곳에서 온전한 나만의시간을 살고, 그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는 것.
누구나 각자의 시간 속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찾아야 할 순간이 온다.
그때가 오면,
훌쩍 떠나는 여행은 이야기의 다른 말이 되어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작가 정욱 ㅣ https://brunch.co.kr/@framingtheworld